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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말빨천재, 프랜 리보위츠/넷플릭스 <도시인처럼>

넷플릭스에 공개된 <도시인처럼>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미국 작가 프랜 리보위츠와 나눈 대화를 7개의 에피소드로 묶은 다큐멘터리예요(이미 2010년에 <Public Speaking>이란 스콜세지의 다큐가 만들어졌는데 이 역시 프랜 리보위츠가 주인공이에요). 

 

마틴 스콜세지같이 유명한 감독이 대체 어떤 다큐를 찍었나 궁금해서 보기 시작한 건데 의외로 넘넘 유쾌 상쾌 통쾌해서 완전 꽂혀버렸어요. 

 

특유의 감각이 묻어나는 마틴 스콜세지의 연출과 음악이 <도시인처럼>을 돋보이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다큐의 주인공 프랜 리보위츠의 매력이 압도적이에요.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가 아니다 보니 처음엔 얼굴도 무지 낯설고 투덜대는 듯한 말투에도 왠지 적응 안 됐지만 그건 정말 잠시뿐이었고, 곧바로 프랜 리보위츠의 유머와 위트, 그리고 무엇보다 속을 뚫는 사이다 발언에 영혼이 세탁당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아우 상쾌해)

말빨천재 프랜 리보위츠, 누구세효?

제 영혼을 탈탈 털어간 이 문제적 인물 프랜 리보위츠(Fran Lebowitz)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대중연설가, 그리고 때때로 영화배우예요(마틴 스콜세지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 출연한 적 있음요). 1950년 생으로, 18살 때부터 줄곧 뉴욕에 살고 있는 대표 뉴요커이자 뉴욕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도시인처럼>에는 프랜 리보위츠가 뉴욕을 빌딩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모형화한 작품 사이를 오가며 스콜세지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뉴욕이란 도시가 그야말로 프랜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작가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뉴욕에 정착한 프랜 리보위츠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 청소부, 개인기사, 택시기사, 포르노그래피 작가 등등을 전전했고요. 재즈 아티스트 찰스 밍기스의 부인이 설립한 작은 잡지사에서 일했으며 이후 스무 살 때부터 11년간 앤디 워홀이 만든 잡지 <인터뷰>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어요. 

 

놀랍게도 엄청나게 유명한 아티스트들과 연을 맺고 있었던 건데요. 찰스 밍기스는 가족 식사에 초대할 정도로 꽤 친밀한 사이였지만 앤디 워홀과는 서로 항상 안 맞았다고 프랜 리보위츠가 다큐에서 직접 밝히기도 했어요. 

 

국내에 번역 출간된 건 단 한 권도 없지만 (왜 어째서!) 프랜 리보위츠는 총 서너 권의 저서를 갖고 있어요.

 

1978년, 그간 써온 칼럼들을 모아 첫 책 <Metropolitan Life>를 출간했고요. 책 출간 후 유명세를 얻어 티브이에도 출현하기 시작했어요. 곧이어 1981년에는 두 번째 책 <Social Studies>가 나왔고, 그로부터 13년 후인 1994년에는 이 두 권의 합본인 <The Fran Lebowitz Reader>와 <Mr. Chas and Lisa Sue Meet the Pandas>가 출간되는데 <Mr. Chas and...>는 놀랍게도 어린이 책이에요!

 

그러고 보니 <도시인처럼> 어느 에피소드에선가 프랜이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네요. 그나저나 판다곰이 등장하는 이 동화를 마지막으로 프랜 리보위츠는 더 이상 책을 출간하지 않고(못하고?) 있어요.    

 

여기가 바로 사이다 맛집

1 도시인처럼(Pretend It's a City)
2 문화, 예술, 그리고 재능(Cultural Affairs)
3 대중교통에 관하여(Metropolitan Transit)
4 돈은 싫지만(Board of Estimate)
5 건강하게 살기(Department of Sports & Health)
6 나이를 먹으면(Hall of Records)
7 책으로 만난 세계(Library Services)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도시인처럼>은 총 7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요. 에피소드끼리 연결되는 내용이 아니라서 굳이 순서대로 볼 필요는 없고요. 오랜 친구인 프랜 리보위츠와 마틴 스콜세지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 사이사이 과거 프랜이 출연했던 토크쇼나 강연 장면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말빨 천재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에 한몫해요.

 

과거 토크쇼와 강연에서 프랜의 대화 상대였던 이들로는 영화배우 알렉 볼드윈,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 작가 토니 모리슨 등이 있어요. 

 

그때 그 시절에도 거침없는 말들 쏟아내주시고욬ㅋ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모습까지 지금과 꼭 같아요. 토크쇼에 출연한 프랜 리보위츠가 의자에 몹시 삐딱하게 앉아 아직 입을 떼지 않은 채 진행자를 능청스럽게 응시하는 모습만 봐도 YOU WIN!을 외쳐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끝으로 ‘사사건건 견해 투척’ ‘그 누구에게도 사과는 없는’ 프랜 리보위츠의 <도시인처럼> 속 웃기고 시원한 발언들을 모아봤어요.

 

#1

질문자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떤가요?”

프랜 “제 라이프스타일이요? ‘라이프스타일’이란 말은 절대 안 씁니다. 그 말이면 충분할 것 같군요.”

 

#2

프랜 “중학교 때 제가 유일하게 탄 상이 최우수 재치상이었는데 집에 가져가기가 무서웠어요.”

진행자 “대체 어떤 학교였길래 재미있다고 상을 줘요?”

프랜 “모리스타운 중학교였어요. 거기가 제 마지막 학력이죠.”

진행자 “가장 재밌는 학생을 뽑아요?”

프랜 “네, 재치상요. 치열한 분야는 아니었어요. 오스카 와일드랑 경쟁하진 않았죠.”

 

#3

“음악가들처럼 사랑받는 사람들은 없어요. 음악가들이야말로 우리가 감정과 기억을 표현할 능력을 주니까요. 다른 예술은 그렇게 못해요. 음악가랑 요리사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이들이라고 생각해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행복을 주죠. 음악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해롭지도 않아요. 행복감을 주는 건 대체로 해로우니 이건 정말 드문 경우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마약이랄까요.”

 

#4

마틴 “현재 우리 문화의 모든 예술 형태를 볼 때 가장 부족한 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프랜 “뭐가 제일 별로냐고요?”

마틴 “네. (웃음)”

프랜 “사기 치기에 가장 만만한 분야가 뭘까요? 제 생각엔 시각예술이에요. 소위 시각예술이라는 것들요. 순 날로 먹는 거죠. 경매장에서 피카소 그림이 등장하면 쥐 죽은 듯 조용해져요. 낙찰가가 정해지고 망치를 두드릴 때부터 박수가 터지죠. 피카소가 아닌 그림 가격에 박수를 보내는 세상이라고요. 더 할 말 없습니다.”

 

#5

“무척 어렸을 때 그 건물에서 하는 파티에 갔어요. 아름다운 19세기식의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죠. 그런 데서 꼭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기에는 최악이었죠.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무너지기 직전이었거든요. 거길 떠나지 않은 건 그렇게 아름다운 집은 다신 못 찾을 것 같아서였어요. 하지만 결국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죠. ‘프랜, 지금 네 상황은 맞고 사는 여자들이랑 똑같아. 친구들은 맞고 살지 말고 헤어지라고 하지만 잘생겨서 좋다는 여자들 있잖아.’ 저랑 그 아파트가 딱 그런 사이였더라고요! 저는 집을 향한 욕망이 정말 강해요. 가구나 그런 것들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산다는 게 무척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이 좋은 집에 살아서 행복한 게 그 염려보다 더 커요. ‘내가 정말 미국인이구나’ 하고 가장 짜릿하게 느끼는 이유죠.”

 

#6

전 담배 중독이에요. 그래서 중독이 뭔지 알아요. 흡연이 현명하냐고요? 어리석죠! 그건 저도 알아요. 12살에 시작하지 않았다면 물론 지금 담배를 배우진 않겠죠. 하지만 그래서 중독이 뭔지 알게 됐고 애초에 중독을 목적으로 삼고 중독자가 되는 사람은 없어요. 제가 만일 내일 당장 죽어도 아깝게 요절했다곤 안 하겠죠. 요절이라기엔 너무 늙었고 지금 흡연 때문에 죽는대도 다들 당연하다고 할 거예요. 제가 여태 살아 있냐는 사람이 지금도 많아요.”

 

#7

“건강 관리가 대체 뭐죠? 건강의 사족이에요. 건강 관리는 제가 보기엔 욕심 관리예요. 아프지 않은 거로는 부족해서 꼭 건강해야 해요. 이건 돈으로 살 수 있어요. 요즘 말하는 건강 관리요. 돈으로 하는 거잖아요. 특별 건강식이니 뭐니 그런 것도 많고요. 각종 씨앗류랑 차 같은 거요. 그런 관리로 얻어지는 것들을 저는 갖고 싶지 않아요. 사양할게요.”

 

#8

“명상이 요가의 일부인 건 알아요. 현재 뉴욕 시민의 3분의 1이 요가 매트를 들고 다녀요. 그것만으로도 전 요가가 싫어요. 그 하나만으로요. 돌돌 만 매트를 들고 돌아다닌다니 대체 뉴욕 패션이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죠? 매트 들고 다니는 사람들 보기 싫어요.”

 

#10

질문자 “심리 상담이나 자기 개발 교육을 시도해보신 적이 있나요?”

프랜 “아뇨. 제게 자기 개발은 제 일이거든요.”

질문자 “비슷한 문제를 겪는 이들끼리 모여서 도움을 구하는 곳요.”

프랜 “안타깝게도 저랑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람은 없어요. 모임을 만들 수가 없죠. 아마도 제가 살면서 주로 하는 활동이 흡연과 복수 계획이어서겠죠. 모임이 필요 없어요. 복수는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가끔 전화는 쓰죠.”

질문자 “그렇다면 흡연은...”

프랜 “취미예요.”

질문자 “좋네요.”

프랜 “직업일지도 몰라요.”

 

#11

질문자 “은밀한 취미가 있나요?”

프랜 “아뇨, 그런 거 없어요. 죄책감 없이 당당하게 즐기거든요. 즐거움을 얻는 행동에 죄책감을 느껴지 않습니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즐거움이 뭔지 생각해보면 그게 뭐든 상관없이 즐겁다면 그냥 하면 돼요. 그냥 즐기면 됩니다. 저는 늘 재미를 추구했어요. 본인이 추구하는 재미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12

“늙어서 좋은 점은 별로 없지만 하나 있긴 있어요. 2050년이면 물이 고갈된다는 기사를 보고 처음엔 ‘세상에!’ 하다가 ‘2050년? 난 어차피 죽잖아’가 되거든요. 남들이 알아서 걱정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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