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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2 이슬아) 고수가 말하는 글 잘 쓰는 방법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

고수가 말하는 글 잘 쓰는 방법 두 번째 고수는 <일간 이슬아>로 유명한 이슬아 작가입니다. 저는 이슬아 작가의 인스타 팔로워였는데 어느 날 <일간 이슬아> 구독자를 모집하는 사진이 올라왔었죠. 벌써 몇 년 전 일이에요. 뭐지? 싶었는데 되게 신선해서 바로 구독 신청을 했었네요. 저는 구독을 계속 이어가진 못했는데 그때의 이슬아가 지금의 이슬아 작가가 되기까지 그 사이의 시간이 되게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몇 년간 꾸준하게 글쓰기를 해왔다는 것과(이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것 같고요) 그것을 통해서 이룬 것들이 정말 놀라워요.  

 

아래 영상은 글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직접적인 팁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글쓰기, 특히나 꾸준한 글쓰기에 대한 이슬아 작가의 생각이 참 아름답고 울림이 있어요. 

 

(**영상 전부를 글로 옮기지 않고 일부 생략했어요.)

 

 

글쓰기란 막막하고 어렵고 귀찮은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작가로 일하고 있는 저도 매번 이 화면(*빈 화면)을 볼 때면 되게 막막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꾸준히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글쓰기에는 마음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저는 종종 제가 게으른 마음이 들 때를 실감합니다. 게으른 마음의 상태일 때 저는 무언가를 굉장히 대충 보고 누군가에 대해서 빠르게 판단하고 혹은 무언가에 대해서 함부로 단정 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꾸준히 쓰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부지런하게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심히 지나쳤던 것도 유심히 다시 보고 뭔가 눈을 씻고 세계를 다시 보는 작업과 비슷합니다. 무언가를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다시 알아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좀 어렸을 때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저는 쑥스러움이 많고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어린 아이였습니다. 저랑 비슷한 어린이였던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쑥스러움이 많은 아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할 말을 절대 제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후회를 하게 되어 있어요. 저도 항상 하루가 대충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되게 많이 땅을 치면서 걸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말을 했어야 되는데 혹은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되는데 이런 후회를 안고 일기를 꽤 많이 썼습니다. 후회와 반성이 가득 담긴 유치원 때 일기였는데요.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서 오늘의 장면과 오늘의 대화를 복기해보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일기를 쓰는 동력은 아쉬움이었습니다. 필요한 말을 제때 못했다는 아쉬움, 좋은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는 아쉬움, 혹은 나는 왜 이런 사람인가 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 저에게 글쓰기란 다름 아닌 아쉬움에서 시작되는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버리는 삶에서 뭔가를 잠시라도 붙들어보고 또 가능하면 복구해보려는 그런 시도가 저에게는 글쓰기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의미의 아쉬움도 있었는데요. 굉장히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 같은 것들이 삶에는 무수히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너무 아름다운 일을 겪거나 너무 감탄스러운 상대를 만나고 나면 그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쉽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냥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들고요. 나 혼자서만 알기에는 아깝다는 마음도 들고요.  

 

여러분께도 이렇게 정확히 기억하고 오랫동안 보존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말로 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 휘발되어버리지만 글로 쓰면 이야기의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뿐 아니라 자기가 써넣은 이야기로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주 쓰다 보니 무심히 지나칠 법한 장면이나 대화 같은 것들을 좀 더 잘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삶에 대한 기억력이 좀 더 화질이 높아진달까요, 해상도가 높아진달까요. 어떤 이야기가 중요한 이야기인지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연습 같은 것을 계속 해왔던 것 같습니다. 

 

또한 글을 쓰는 날에는 어쩐지 인생을 두 번 사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하루가 두 번씩 재생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니까 겪으면서 한 번, 해석하면서 한 번. 이렇게 인생이 두 배로 풍부해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런 연습을 꾸준히 했더니 어느새 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꾸준한 글쓰기는 결코 나에 대한 사랑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나르시시즘에 갇힌 글쓰기는 몹시 답답하고 좁은 세계일 것 같습니다. 그것은 주어가 나뿐인 세계인데요. 계속 글을 쓰다보면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쓰기가 언제가 바닥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금세 바닥이 납니다. 생각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에게서 남으로 주어를 이동하고 확장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부지런한 사랑이라는 게 탄생하게 됩니다. 

 

저는 아이의 원고지를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이게 사랑이 아니고 무얼까. 이건 사랑의 과정 중 하나잖아요. 우린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무심히 지나쳤던, 무심히 내뱉었던 혼잣말도 굉장히 기억하게 되고 나 아닌 사람의 고민도 곱씹게 됩니다. 이렇듯 한 편만 쓰면 몰라도 여러 편을 꾸준히 쓰다 보면 참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만 쓰다가 엄마는 동생은 그들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이렇게 주어를 옮겨가고 추가하고 확장하게 됩니다. 1인칭에서 2인칭과 3인칭의 글로 넘어가는 것이지요. 그것은 게으른 내 마음에만 안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음과 삶에 부지런히 접속하는 과정입니다. 주어를 타인으로 늘려나가면서 내 삶은 조금씩 확장되고 아이들의 마음이 굉장히 바빠지고 부지런해집니다.

 

저는 이 과정을 시선의 이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내 눈뿐 아니라 남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만 갇히지 않고 가끔씩 엄마도 마음도 되었다가 동생도 마음도 되었다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되었다가 혹은 안쓰러워하는 동물의 마음도 되어봅니다. 

 

입체적인 관찰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상대의 여러 가지 면을 포착하고 헤아리려는 의지 또한 사랑이잖아요. 시선의 이동과 입체적인 관찰 모두 부지런한 사랑의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알면 알수록 그 사람이 얼마나 단순하지 않은지, 얼마나 복잡하고 풍부한지 갈수록 알게 됩니다. 그들을 잘 설명하기 위해 풍부한 표현을 준비하고 정확한 묘사가 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도 역시 글쓰기에서 일어나는 부지런한 사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에 대한 사랑이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넘어가는 과정, 이것이 꾸준한 글쓰기의 아름다운 작업 중 하나일 텐데요. 

 

가시나무라는 노래 가사를 아시겠지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다고 말하며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저는 글쓰기란 어쩌면 정확히 이 가사의 반대로 가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속에 당신의 쉴 곳 있다고 말하는 것, 내 속을 나로만 채우지 않는 것, 이것이 부지런한 글쓰기의 세계입니다.

 

늘어나는 주어 속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내 글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내 안에 초대해서 그들이 주어인 연습을 갈고닦는 것, 이것이 제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일 중 하나이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일 중 하나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말했습니다.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일이라고요. 우리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무대에서 서 있는 이 순간 역시 굉장히 무참하게 1초 2초 흘러가고 있는데요. 어떤 순간에 우리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겪을 때 혹은 너무 사랑하는 사람과의 한때를 보낼 때 그것을 보존하려는 마음, 거기서 시작되는 글쓰기에 대해 종종 생각합니다. 아름답고 쓸모 있는 글쓰기라는 과정이 여러 분의 삶에도 깃들기를 소망하겠습니다.   

<이슬아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글>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글에는 오감이 살아 있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이런 감각을 잘 묘사할수록 글에는 좋은 생명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_영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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